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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 섬은 어떤 곳인가 - 기본 정보, 지리적 정보, 역사

by 나도갈래 2024. 8. 17.

혹시 이스터 섬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이번 게시글에서는 이스터 섬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다루고자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면 이스터 섬의 기본 정보, 지리적 정보, 역사를 알아가실 수 있습니다.

 

기본 정보

이스터 섬(Easter Island)은 태평양 남동부에 위치한 외딴섬으로, 칠레의 해외 영토입니다. 이스터 섬의 현지 명칭은 "라파 누이(Rapa Nui)"로, 이는 섬의 원주민 문화와 언어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이스터 섬은 면적 약 164.5제곱킬로미터로, 매우 작은 섬입니다. 인구는 약 7,000명 정도로, 대부분 섬의 수도인 항가로 아(Hanga Roa)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스터 섬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아이(Moai) 석상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석상들은 섬 전역에 흩어져 있으며, 이스터 섬의 독특한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원주민 언어인 라파 누이어와 스페인어가 주요 언어로 사용되며, 칠레의 영향을 받아 스페인어가 더 널리 쓰입니다. 이스터 섬은 남반구에 위치해 있어 기후는 온화하고 해양성 기후를 띱니다. 여름의 낮 기온은 26도, 밤 기온은 19도 정도이며, 겨울의 낮 기온은 20도, 밤 기온은 15도 정도입니다. 섬 전체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강수량은 일정하지 않으나, 연중 고르게 분포하는 편입니다. 이스터 섬은 시차가 칠레 본토와 2시간 차이가 있으며, 칠레보다 뒤처져 있습니다. 한국과는 약 15시간 정도 시차가 나기 때문에, 한국이 오후 9시일 때 이스터 섬은 오전 6시 입니다. 경제적으로는 관광업이 주요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세계 각지에서 방문하는 관광객들 덕분에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이스터 섬은 전 세계적으로 안전한 여행지로 평가되며, 치안이 안정적입니다. 다만 섬이 워낙 외딴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은 감안하고 오시는 것이 좋습니다.

 

지리적 정보

이스터 섬은 태평양의 남동쪽의 외딴 지역에 있는 작은 섬으로, 칠레 본토에서 약 3,700km 떨어져 있습니다. 이스터 섬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섬들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스터 섬은 삼각형 형태로, 길이는 약 24km, 폭은 약 12km 정도로 작으며, 울릉도의 2개 반 정도의 면적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스터 섬의 남서쪽에는 섬의 도심지인 항가로아(Hanga Roa)가 있으며, 이곳 근처에 이 섬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곳 이외의 지역에는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습니다. 섬의 지형은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라노 카우(Rano Kau), 푸이 푸이(Vai Puia), 라노 라라쿠(Rano Raraku)라는 세 개의 주요 화산이 존재합니다. 섬의 지표는 대부분 화산암과 용암 지대이며, 그로 인해 지형이 거칠고 험준한 지역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스터 섬은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해변과 절벽이 펼쳐져 있으며, 산호초가 발달해 있어 해양 생태계도 풍부합니다. 특히 오로고(Orogo) 분화구와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 해안 지역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입니다. 이스터 섬은 삼림 벌채로 인해 원래의 열대우림이 거의 사라졌지만, 최근 들어 재조림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섬의 식생은 주로 잔디, 관목류가 우세하며, 일부 조림된 나무들이 존재합니다. 동물상은 제한적이지만 섬 주위에는 다양한 해양 생물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섬의 고립된 환경과 자연경관은 이스터 섬을 독특한 생태 환경을 가진 곳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역사

이스터 섬의 역사는 약 1,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폴리네시아인들이 처음 이 섬에 정착하면서 시작됩니다. 이들은 태평양을 항해해 이스터 섬에 도착했으며, 라파 누이 문화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초기 정착민들은 복잡한 사회 구조와 독특한 종교적, 예술적 전통을 발전시켰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모아이(Moai) 석상입니다. 이 거대한 석상들은 섬 전역에 세워졌으며, 주로 조상 숭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15세기경, 이스터 섬은 자원의 고갈과 함께 내분과 사회적 갈등을 겪었습니다. 특히 숲의 남벌과 인구 과잉은 생태 환경을 파괴하고, 이로 인해 식량 부족과 전쟁이 발생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시기에 모아이 제작이 중단되었으며, 일부 석상들이 쓰러지는 등 사회가 붕괴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1722년, 네덜란드 탐험가 야코프 로헤벤(Jakob Roggeveen)이 유럽 최초로 이스터 섬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부활절 날 섬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를 '이스터 섬(Easter Island)'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후 1774년 제임스 쿡과 프랑스의 라페루즈 탐험대 등 여러 유럽 탐험가들이 이 섬을 방문하였고, 이 과정에서 섬의 인구는 전염병과 외부 침략으로 급감했습니다. 19세기 중반, 페루의 노예 사냥꾼들이 섬의 주민들을 강제로 끌고 가면서 인구는 더욱 감소했습니다. 이로 인해 라파 누이 전통과 문화는 큰 타격을 받았으며, 인구는 100명 이하로 감소하기도 했습니다. 1888년, 이스터 섬은 칠레에 병합되었고, 이후 칠레의 특별 영토로 남아 있습니다. 현재 이스터 섬은 라파 누이 문화 보존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으며, 199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모아이 석상 복원 작업과 라파 누이 문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오늘날 이스터 섬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문화적 관광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